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이알렉상드르 베르티에 (문단 편집) === 은퇴 후 의문의 죽음 === 나폴레옹이 폐위되어 엘바로 유배당했을 때 베르티에는 직위에서 은퇴하여 6백에이커에 달하는 그의 영지에 돌아가 취미생활을 즐겼다.[* 조각과 매사냥이 취미였다고 한다.] 그는 [[루이 18세]]의 용서를 받았으나 더 이상 정치나 군사에 뜻을 두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엘바를 탈출, 100명 남짓한 병력으로 귀환했을 때 나폴레옹은 그가 따라오기를 바랐으나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은 채 자신의 영지에 조용히 머물렀다. 그는 1815년 6월 1일, [[워털루 전투]] 2주 전에 밤베르크의 자택[* 해당 자택은 과거 밤베르크 주교공들의 신궁전이라고 한다.[[https://www.archiseek.com/2013/residenz-bamberg-bavaria/|#]]] 2층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의 사인은 명확하지 않다.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 군대가 프랑스를 침범하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나 창밖으로 몸을 던져 자살한 건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암살당한 건 아닌지 여러 추측이 난무했으나 이는 결국 밝혀지지 않았고, 어쨌든 그는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은 애매한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자살인지 암살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정황이 조성되었고 왕당파의 암살을 자살로 위장시키기 쉬운 조건이 될 수 있으므로 암살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테면 나폴레옹이 귀환하자마자 나폴레옹을 따른 다부를 암살한 뒤 자살로 위장시켜 봐야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베르티에는 그 애매한 태도 때문에 보다 쉽게 죽음의 맥락이 불분명한 조건을 조성하고 말았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부고를 듣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은 '''"이젠 누가 내 명령을 이해하고 작전을 세우냐"'''며 통곡했다고 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Louis-Alexandre_Berthier_bust_%28Chateau_de_Chambord%29.jpg]]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